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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거지
옥상거지: 우린 그곳에 없겠지만 (2019)
최상언, 김거지, 이옥합
"난 연주에 자신이 있었다. 2012년 실용음악학교를 졸업한 내 나이 스물여섯. 당시 나의 주위엔 지금보다 많은 친구들이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나의 목표는 더 유명한 가수와 작업을 하고,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후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 아마 대부분 이 정도의 욕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그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마냥."
"그중 난 아주 운이 좋게도 여러 가수들의 앨범에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내 주위에선 나만이 누릴 수 있었고 나도 그 것을 놓고 싶지 않았다. 주위로부터의 칭찬, 선망에 찬 눈빛,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카타르시스 등이 나를 우월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은 특권과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이 들어오면 녹음실로 간다. 악보를 보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듣는다. 관례적으로 그렇게 2-3번 정도 음악을 들은 후 바로 녹음에 들어간다. 고요한 녹음실 안 차갑게 식은 공기와 헤드폰에서 연신 들려오는 작곡가의 목소리, 땀으로 다 젖어가는 손과, 몇 번째 마디를 치고 있는지 혼란한 머릿속. 경험이 부족한 연주자라면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선 좋은 연주를 하기 힘들다. 나 또한 처음엔 그러했고, 때로는 녹음실에서 쫓겨나듯 나와 집에 돌아가서 우는 날도 있었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져서, 화가 나서 그리고 또 억울해서 스스로를 그렇게 다그치며 몰아붙이듯 연습에 몰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모든 것을 가로채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늘 쫓기며 살았다."
"처음 증상을 느꼈던 때를 확실히 기억한다. 2014년 1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문인 은태 형의 노래 '그려보다'라는 노래를 녹음할 때였다. 그날따라 아무리 손을 풀어보아도 움직임이 유난히 둔하게 느껴졌다. '연습이 부족한 걸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녹음을 마쳤다. 그날 이후 연습을 하면 할수록 손이 마비되는 것 같은 증상을 느끼고 난 7~8개월간 수많은 병원과 한의원을 돌아다녔고 그해 8월 건국대학교 대학병원에서 병을 진단받았다. 국소이긴장증이라는 난치병이었다. 이 병은 이때까지 나아진 사례가 없는 병이라는 것,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무리한 연습의 결과일 수 있다는 간단한 말과 함께 짧은 진료가 끝났다. 병원 밖으로 나와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내가 기타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해서 항상 불안해하고 걱정하셨던 분이셨고, 늘 음악보다는 다른 일들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씀을 하시던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들은 위로의 말에 결국 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해 9월 3일 나는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리며 내 연주자 생활에 마침표 같은 쉼표를 찍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션 연주자의 삶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그로부터 배운 것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겠지만, 당시 나의 몸과 마음엔 여유가 없었다. 늘 긴장하고 항상 초조했다. 전화기 진동이 울리고 발신자가 나에게 일을 주는 조금은 어려운 사람들일 경우엔 감사하고 기쁜 마음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으면 내 속마음과는 다르게 "네 해볼게요! 잘 할 수 있어요!" 같은 명랑한 말들만이 나왔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아줄만이 탈출구라 여겼다. 왜 그랬을까. 지금 그때의 나에게 말을 전할 수 있다면 한마디만 하고 싶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